2023 보스턴 게으른 농경일지

2023년 3월 12일 보스턴 농경일지 [8종의 고추와 함께 출발하기]

게으른보농 2023. 3. 13.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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솎아주기는 어려워요
 
심기도 많이 심었는데, 발아율까지 뻐렁쳐버리면 어쩌란 말이냐. 
처음에 그 이상한 스펀지 발아로 시작했을때, 발아율이 영 시원찮아 보여서 조급해진 내가 여기저기 물발아도 하고 흙에도 심어보고 했더니 꽈리 밀도가 폭발수준이다. 
 
프로농사꾼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솎아주기'가 정답이라고 알려줬을거다. 나도 동의하는바이다. 그러나 난 어정쩡한 2년차 농사꾼이라 그런지 좁은 포트에서 뒤늦게 얼굴을 내민 저 아이들을 매몰차게 뽑아낼 자신이 없다. 연두빛으로 뿅하고 올라온 쌍떡잎들이 새초롬하고 어여뻐서 그냥 조금 더 키울까.. 하고 몇백번을 고민했다. 어떻게든 다 살려서 나눠심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뒷마당을 내다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추를 심으면 될지 시뮬레이션을 골백번을 더 해보았다. 해가 잘 들지 않으면 모종을 살려 심어도 소용이 없으니, 시간마다 햇빛이 잘 드는 부분을 체크하기도 했다. 
 

서울 수준의 밀도를 보여주는 꽈리 항공샷

 
만 하루를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린것은.. 꽈리고추는 저장해서 먹기도 어렵고 홍고추 만들기도 애매하고, 더욱이 저걸 다 심을 공간도 없다는 것이다. 고추도 교잡이 잘 된다고 해서 종이 다르거나 맵기가 다른 고추들은 200m씩 뚝뚝 떨어뜨려 심어줘야 한다는데, 그러기엔 꽈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우리집 마당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국 솎아주기 단행.
 

다들 너무 어여쁘게 자라줘서 무얼 뽑아낼지 고르는 것도 고역이었다
조금은 한산해진 포트


 
얼갈이 배추를 솎아줄때는 뿌리가 뚝뚝 끊어지기도 하고 이파리가 쉽게 흐늘흐늘해 져서 뽑아낸 것들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어여쁜 고추는 왜 예쁘고 깔끔하게 뽑히기까지 하는걸까? 마치 다시 어딘가 빈 곳에 심으면 '저희는 지금부터도 잘 자라날 수 있어요~'하고 나를 꾀여내는 듯한 자태이다. 
 

씨앗으로 고이 남겨둘걸, 열심히 돋아난 너희의 노력과 시간에 미안해

 


저렇게 고추 새싹을 하염없이 10분정도 내려다보다가 휙휙 모아 쓰레기통으로 버려버렸다. 저걸 다시 심어버리면 애써 솎아주기 한 이유가 없으므로. 욕심많았던 과거의 내가 조금만 자제했더라면 저 씨앗은 내년쯤 마당에서 자라고 있을텐데. 미안하다 얘들아. 
 
 
삼동파가 도착하다
 
Etsy에서 주문한 Egyptian walking onion이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층층파, 삼층파, 삼동파라고 불리는 종류의 잎대파이다. 국물요리에 주로 쓰이는 흰 부분이 적고 푸른부분이 더 많은 파 종류다. 나는 요리할때 주로 푸른 부분을 쓰는 편이니 하얀부분이 많은 외대파보다는 잎대파를 키우는 게 더 좋겠지. (그렇다고 외대파 씨앗을 안 뿌려놓은건 아니다)
 

 
작년에도 etsy를 뒤져 spring onion bulb(종구)을 찾아 심었고, raised garden bed에 가득 심어 1년 내내 참 잘 먹었었다. 그건 삼동파의 주아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쪽파 같은 종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쪽파보다는 굵게 자라는편이었지만) 올해는 삼동파를 잘 키워 스스로 주아까지 수확해보아야겠다. 이렇게 나만의 heirloom을 구축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있을 듯하다. 
 
뒷마당 데크 위에 올려둔 raised garden bed의 흙을 좀 건드려보니 아직 흙이 꽝꽝 얼어있었다. 아무리 추위에 강한 파 종류라고는 하지만, 주아 시절부터 그리 매섭게 키울 필요가 있나 싶어 실내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바깥을 나뒹굴던 긴 화분을 깨끗이 심고 코코피트와 질석을 섞을 흙을 채운 뒤 20개의 주아를 쪼롬히 꽂아주었다. 반은 흙속에, 나머지 반은 땅 위로 올라오도록 심었다. 
 

 
일주일정도면 파랗게 대가 올라올 것이다. 그때부터는 cat grass로 혼동하고 씹고 뜯기 당하기 딱 좋으니 indoor predators의 눈에 띄지 않을 높은 곳으로 올려놔야 할 것이다. 
 
 
꽃은 피지만 열매는 떨어질게
 
엄동설한 추위에 저녹색증 환자의 욕심으로 인해 택배로 배달된 meyer lemon tree는 여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우리집에 도착했을 때, 택배 상자안에서 얼마나 흔들렸는지, 온 잎이 흙먼지에 덮여서 왔었고, 그 안에는 떨어진 작은 레몬과 꽃들이 수북히 굴러다녔었다. 
 
하루이틀정도 해드는 창가에 얌전히 두었다가, 미지근한 물을 틀어 잎과 줄기 구석구석을 씻어 주었다. 조금이라도 숨쉬기 편해지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집에 온걸 환영한다는 웰컴샤워(?) 같은거였다. 이 녀석은 웰컴샤워가 맘에들지 않았는지, 그 이후에도 매일 3-4개씩 이미 달려서 왔던 작은 레몬 열매들을 떨궈내었다. 
 
이대로 말라죽어버리면 어쩌지, 걱정하던 찰나. 오늘 레몬 꽃이 두개나 핀 걸 발견했다. 
 

동글동글 하얗게 달린 것이 꽃
피기 전엔 이렇게 길어진다
그리고 뿅하고 피어버린 레몬 꽃
이미 달려서 왔던 레몬들은 말라가는 중이지만...

 
이미 달려서 왔던 열매는 오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집에서 피기 시작한 꽃은 조심히 손으로 수분시켜줬는데, 쭉 건강했으면 좋겠다. 올해는 집안에서 레몬을 키워 먹겠다는 내 야망을 부디 이뤄줬으면... 
 

엄마가 하는건 무조건 참견해야 하는 녀석

 
 
꽈리지옥 다음엔 파드론 지옥
 
물에 적신 화장솜에 한 패킷을 다 부어버렸던 Padron pepper의 발아도 심상찮다. 이미 한 차례 뿌리꼭지가 나온 것들을 흙으로 옮겨주었는데, 남은 씨앗들도 차례대로 발아하고 있다. 이틀정도 씨앗과 모종들이 있는 방의 난방을 조금 올려주었더니 난대성 작물들의 발아와 성장이 엄청나게 촉진된 모양이다. 
 

 
촉촉한 솜위에서 꾸준히 발아하고 있던 파드론 씨앗들. 뿌리꼭지가 나온 수준인 것도 있고, 그 안에서 이미 떡잎이 생겨서 씨앗을 빠져나오고 있는 중인 씨앗도 있었다. 씨앗 껍질 안에 초록 떡잎이 생겨 바깥으로 비치는 것을 보니 마치 병아리 부화과정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 많은 파드론페퍼를 어찌할꼬? 열심히 키워서 단골 스페인 타파스집에다가 부지런히 갖다 줘야하려나? 여담이지만 우리 부부가 자주 가는 타파스 집이 있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pimientos de padron 메뉴가 없다. 어느 타파스 집이나 꼭 감초처럼 있어야만 하는 메뉴로 알고 있는데.. 열심히 파드론 페퍼를 키워 가져다주고, 메뉴에 추가해달라면 해주실까? 
 

병아리처럼 부화한 씨앗도 차례대로 흙으로 옮겨주었다

 
꽈리고추 솎아내기는 그렇게 마음아파했으면서, 차라리 발아 하기 전에 씨앗을 내다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치만 또 뿌리가 뿅하고 나와있는 씨앗은 나름대로 귀엽단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주된 원인)
 
 
 
꽃밭 준비도 차근차근
 
일찌감치 새싹이 나왔던 Zinnia(백일홍) 종류들은 grow light의 영향권 아래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얼른 땅이 녹아서 앞마당에 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Zinnia는 cut-and-come again 종류라서 꽃대를 잘라주면 또 꽃대가 올라와서 계속 계속 피어난다고 한다. 올해 앞마당이 알록달록할 걸 생각하니 설렌다.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앞마당)

 
과꽃 종류인 Aster도 뿅뿅 하나씩 나오고 있다. 일부러 이 색깔 저 색깔 다양하게 샀고, 모종도 분리해서 심었다. 잘 키워서 앞마당을 풀컬러 바둑판 같이 디자인해볼까 하는 중인데, 내 맘대로 되어줄지는 의문이다. 
 

 
절화나 꽃나무는 좋아하지만, 풀 형태(?)의 꽃 기르기에는 도통 관심이 없단 나다. 농사꾼 기질 때문인지,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아니면 별로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텃밭준비를 하면서 해외 유튜버들의 영상을 많이 보고 있었는데, 다들 해충방제를 위해서 Marigold(금잔화)를 작물 사이사이에 심어주는게 아닌가? Companion planting이라는 거창한 개념도 있더라. 작년에 배추벌레와 진드기, 응애 등에 지독하게 시달린 기억이 떠올라 나도 메리골드 씨앗을 주문하기로 했다.
 
늘 그렇듯 etsy 판매자의 다른 상품 보기 버튼을 눌러버린 나는.. 메리골드 씨앗을 사면서 꽃 씨앗을 한 10종류를 함께 주문한 것 같다. 사고 보니 shasta daisy처럼 가을에 심어 월동시켜야 다음 봄에 꽃이 핀다거나, Heleborus (Christmas rose)나 agapanthus (lily of the nile)처럼 심은 지 2-3년 후에야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들이 섞여있었다. 미리 좀 찾아보고 살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aster와 zinnia처럼 금방금방 새싹이 나오는 것들도 있어서 금방 위로가 되었다.
 
조금 있으면 해바라기도 심고, 메리골드 씨앗도 뿌려야하는데 텃밭뿐만 아니라 꽃밭도 바삐 돌아가게 생겼다. 게다가 이번에 예상치못하게 Poppy 씨앗을 많이 나눔받아버렸기에 팔자에 없던 양귀비꽃도 볼 예정이다. 이 빌어먹을 인터넷이 알려준 바로는 Poppy는 Corn flower와 함께 키우면 그렇게 예쁘다고 한다. Poppy는 빨갛고 corn flower는 파랗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함께 키울 용도로 corn flower(수레국화) 씨앗도 주문해버렸다. 알록달록한 바둑판으로 만들려던 내 앞마당은 그냥 이 꽃 저 꽃 신나게 자라는 운동장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발아 공식은 우리집에선 통하지 않아
 
사실 이 고추 저 고추 씨앗 발아에 하도 시달린 터라, Jalapeno 고추는 5개만(?) 물발아하는 곳에 올려두었다. 고추는 암발아하는 종류인데 광발아하는 다른 씨앗들이랑 같은 통에 넣은지라 어쩔 수 없이 쨍쨍 해가 비치는 곳에 두었다. 다른 것들 발아되고 천천히 발아해도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도 있는데... 
 
왜 발아가 잘 되는데!!! (극한직업 오마주

위에서부터 할라피뇨-컬리 파슬리-시소-이탈리안 파슬리

 
게다가 'Notoriously slow'하게 발아한다던 파슬리는 왜 2-3개나 발아해버리는겁니까? 암발아 씨앗은 햇빛 쨍 쐬어줘도 쀽하고 나와버리고, 느리게 나온다는 씨앗은 4일만에 뿌리가 나오는 기적... 우리집은 발아공식을 전부 무시하는 경향이 있구나.. 뭐 파슬리 같은거는 어차피 수경재배할 거니까 새싹 나올때까지 일단 그 통에서 버텨다오.. 
 
저 통에서 제일 먼저 발아했던 화이트 세이지는 흙에서도 빠르게 자란다. 흙에 옮겨준지 3일만에 새싹이 뿅하고 나와버렸다네. 
 

 
세이지는 잎이 통통하고 식물 자체가 좀 큰 모양이라 화분에 심어줄 예정인데, 해충을 쫓는 타입인지 해충을 모으는 타입인지... 토끼가 좋아하는지? 다람쥐가 뜯어먹으려고 하는지 좀 찾아본 다음에 실내에서 키울지 바깥에 심어버릴 지 결정해야겠다.
 
 
 
청양고추 너마저
 
미나리 내음 맡고 가사상태에서 심어버렸던 묵은 씨앗들은 발아율이 처참했다. 오이고추가 그나마 지난 주부터 슬슬 머리를 내밀고 있었지만 겨우 나온 깻잎도 비실비실하고, 발아율도 절반가량이었다. 그 중에 발아율이 제일 안 좋았던 게 청양고추였는데 20일이 다 되어 가도록 소식이 없으니 그냥 씨앗의 발아기한이 다 되어버린것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이삿짐에서 발견한 한 4년쯤 된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발아 기한이 다 되었다는건 발아가 안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발아율이 떨어진다는거였구나. 하긴 이집트나 신라 무덤에서 나온 씨앗도 발아시킬 수 있다는데, 고작 4년된 씨앗이 발아율이 0%일리가. 청양고추 종류는 올해 모르는척 넘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약간 안도했는데 느슨해진 농부의 마음에 긴장감을 주는구나 네가... 
 
발아가 잘 안되나보다 하고 안도했던 또 다른 종류, 친정집 고추다. 홀트가든(holtgarden)에서 시킨 대과품종 홍고추인데, 물발아도 생략하고 냅다 흙에다 꽂았더니 영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방금 산 씨앗이 안 올라와서 분통터지면서도 발아율이 낮은 줄 알았던 신호탄 홍고추가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걸 보며, 이거라도 올라오지 말아라 했던 것이었다. 
 
아니 근데 오늘 보니 하나가 뿅하고 올라와있는게 아닌가. 

 

하나 올라오면 2-3일 안에 여기도 새싹밀도가 서울수준이 되겠지

 
이로써 게으른 보스턴의 농부는 올해 홍고추(2종), 청양고추, 꽈리고추, 파드론페퍼, 할라피뇨, 풋고추, 피망(노랑)을 전부 키워내야하는 숙명을 떠안게 되었도다. 
 

살려줘

 
 
모두 잘 자라고 있어요
 
모종으로 만들어 놓은것 중에 제일 예쁜 것을 뽑으라면 뭐니뭐니해도 단호박이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쌍떡잎식물'의 설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양이기도 하고, 이파리 자체가 통통하고 커다랗기 때문에 더 귀엽다. 애호박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단호박에 비하면 떡잎의 크기는 조금 작고 길쭉한 편이다. 
 

가장 앞쪽에 있는 게 단호박. 본잎도 귀여워라

 

 

따뜻한 창가에 에어로가든 빛이 닿는 곳에 올려두니 쑥쑥자라 본잎까지 한장 더 올라왔다. 덩굴식물이니 실내에서 너무 많이 커버리면 옮겨심기전까지 곤란해지는 걸 알면서도,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고 보는 재미는 있다. 
 
 
포기나누기 해준 아가 방풍들도 잘 자란다. 올해 여러 한인분들에게 씨앗나눔을 하면서, 작년에 나에게 수세미 씨앗을 나눔해주셨던 분이 생각나서 쪽지를 보냈더니 방풍을 키워보고 싶다고 하셔서 보내드렸다. 멀리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분이라서 씨앗만 보내드렸지만, 가까이 사셨다면 아기 방풍을 뿌리째로 나눠드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반을 잘라 물에 담가 두었던 고구마는 뿌리가 자라면서 밑둥이 답답해보여서 큰 물컵으로 옮겨주었다. 뿌리가 바닥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쑤시개로 3군데를 꼭꼭 찔러 고정하였는데,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옆구리 팍팍 찌른것이 미안해 plant food를 물에 좀 풀어주고, 해가 더 잘들고 히터바람이 잘 닿아 따수운 곳으로 옮겨놔주었다. 
 

 
솎아주기한 얼갈이 배추도 에어로가든 앞에서 인공 빛을 받고 잘 자라는 중이다. 작년엔 빛이 부족한 곳에서 키웠다가 웃자라버려서 옮겨심기할때 흐늘흐늘대는 애 중심을 잡느라 어찌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 뒤로 배추나 잎채류는 꼭 빛이 잘 닿는 곳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비닐에 동동 싸여서 왔던 elderberry는 몸살을 앓고 있는 레몬과 달리 잘 적응한 것 같다. 왠지 잎도 더 푸릇푸릇한 것 같고, 잎과 줄기에 생기가 도는게 우리집이랑 잘 맞는 모양이다.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기 위해 작은 화분에 심어주었지만 성장이 빨라지면 여름에는 깊은 화분을 구해다가 옮겨주어야겠다. 
 

잘하면 올해부터 꽃을 보여주려나?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줘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어

모종을 무른 흙(코코피트+질석)에다가 키워서 그런지, 단단한 흙에서 키웠다면 흙이 잡아주었을 씨앗 껍질이 새싹에 끼여올라오는 일이 잦다. 주키니 호박이나 애호박 새싹 끝에 덜갈라진 씨앗이 걸려서 잎이 양쪽으로 갈라지지 못하고 줄기만 길어지는 걸 벌써 몇번째 보고 있다. 섣불리 인간이 손을 대었다가는 껍질을 빼다가 새싹이 다칠까 걱정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자니 제대로 자라지 않을까봐 또 걱정이다. 새가 알을 깨는걸 어미새가 줄탁동시로 도와주듯이, 얘가 도와달라고 하는 사인을 보내면 내가 딱 적절한 때에 끄집어내줄텐데.. 식물은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보고 있는 농부 마음은 애가 탄다. 
 

꺼내줘야할지 말지 고민되어서 이틀째 째려보고 있는 주키니
너무 오래 째려보다가 꺼내주는게 늦었더니 잎이 상해버린 애호박
꺼벙이들처럼 줄줄이 까만 씨앗을 머리에 이고 나온 금장외대파

 
물어볼 수가 없으니 별수 있나, 계속 계속 째려보다가 기회를 노려보는 수밖에...
 

Get ready with me - Outdoor planting

우리집 앞뒷마당은 겨울내내 왕창 내려 꾹꾹 쌓인 눈으로 뒤덮여 있다가, 요 며칠 해가 나고 기온이 올라 가장자리부터 녹고 있다. 맨땅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한게 반가워 버선발로 마당에 뛰쳐나갔다. 소위 월동한다는 작물들을 마당에 심어놓았던 게 몇개쯤 있었기 때문에 괜시리 기대감을 갖고 나가보는 것이다. 겨우내 별 관심도 주지 않고 짚으로 덮어주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양심도 없지.
 
그러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작물들은 게으른 농부에게도 자비로운가보다. 추운 우리나라의 겨울도 이겨낸다는 방풍이 보스턴의 겨울도 사뿐히 이겨내고 연두빛 싹을 밀어올리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화분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좀 더 튼튼해보이는건 내 착각일까

 
삼동파를 키워 심을 예정인 raised garden bed에도 지난 해 내내 키워 먹은 파가 겨울을 이겨내고 초록초록하게 올라와 있었다. 저 bed위에 눈이 족히 20cm는 쌓여있었는데, 햇빛도 못받고 꽁꽁 언 흙에서 어찌 살아남았는지 모를일이다. 저렇게 한 겨울 홀로 이겨낸 파를 봄에 쏙쏙 뽑아먹을 생각을 하니 좀 미안해진다. 저 아이들은 좀 열외로 몇달 키워주고, 종구가 나눠져서 포기를 나눌 수 있게 되면 그때 먹어야(?)겠다. 

 
 
P.S. 이웃집 뒷마당의 리트리버
 
Raised garden bed 확인차 뒷마당 데크에 나가있었더니 우리집 방향으로 뒷마당을 두고 있는 이웃집에서 리트리버 한마리가 나를 보고 시끄럽게 짖어댄다. 처음에는 '니네집도 아닌데 뭘 지킨다고 짖어대니' 싶어서 그 개가 성가시다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개가 무슨 잘못인가 싶었다.
 
이효리가 나온 캐나다체크인에서 한국 유기견들을 북미로 입양보내면서 북미의, 서양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좀 더 개를 성숙하게 키우는 문화가 있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집만 봐도 그렇고 주변집들을 쭉 둘러보아도 미국이라고 개를 다 강형욱처럼 키우는 건 아닌것 같다. 소위 American Ideal Family라고 하면 엄마, 아빠 그리고 딸 하나 아들하나지만 정말 완벽하게 완성하려면 꼭 리트리버가 있어야 한다나? 아마 저 이웃집의 리트리버도 애들이 한 대여섯살쯤 되었을때, 강아지 사달라고 조르는 그 타이밍에 들였을 것이고, 아들이 teenager가 되어 더 이상 작고 귀엽거나 새롭지 않은 강아지에 무심해지고, 부모는 애가 사달라고 해서 샀으니 니가 알아서 해라- 하게 되어버린게 아닐까. 
 
남이사. 남의집 사정 속속들이 아는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말하나 싶겠지만... 내 기억을 더듬어봤을때, 저 집의 teenager 아들래미도 부모도 저 개를 산책시키는 걸 본적이 없다. 아마도 산책 대신 너른 뒷마당에 일정 시간 풀어놓는것 같은데 영역동물인 고양이와 달리 여기저기 탐험하고 냄새 맡고 social 활동을 좋아하는 개들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저 개한테 얼마나 무심한지.. 내가 우리집 뒷마당에 서있는 내내 한 20분을 내리 짖어대는 데도 집 안에서 사람들이 꼼짝도 안하고 나와보지도 않더라. 집에 사람이 없나 했지만 개 짖는 소리에 우리집 고양이들이 거실에서 바들바들 떠는 걸 보고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뒷문을 열어 개를 집으로 들이더라. 그러니 내내 집에 있으면서, 이웃집을 향해 목청이 나가도록 짖는걸 들으면서도 20분간 그대로 둔거다. 이웃집에도 똥매너지만 자기 개한테도 정말 못할짓이 아닌가? 
 
봄이 오면 뒷마당에 더 자주 나가 있어야 하는데, 나갈때마다 저렇게 짖어댈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맛있는거라도 던져주고 좀 꼬셔볼까 싶지만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 남의 강아지한테 먹이를 주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냔 말이다. 차라리 내가 저 아이 산책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심정이다.
 
 
올해 농사는 역설적이게도 이웃집 리트리버의 기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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