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보스턴 게으른 농경일지

[다람쥐 때문에 실패] 미국에서 한국 고구마 키우기

게으른보농 2023. 3. 15. 14:01
728x90

흔히 고구마를 영어로 하면 sweet potato라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미국에 처음 와서 로컬 식료품 마켓에서 sweet potato라고 적힌 걸 사서 찌면, 대부분 속이 주황색에 가깝고 물이 흥건한 이상한 채소를 마주하게 된다. 질감은 호박고구마보다 3배는 묽고 그렇다고 달거나 고소하지도 않다.
 
이 땅에 갓 도착한 한국인은 주로 오이같은 식감에 아무맛도 나지 않는 미국 딸기에 처음 놀라고, 물 같은 미국 고구마에 두번째로 충격을 받는다. 한국딸기는 미국땅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비슷한 맛을 내는 것도 구하기 어렵지만 한국고구마와 같은 식감의 고구마는 있다. 물론 호박고구마, 꿀고구마, 밤고구마 같은 자잘한 분류를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국고구마와 가장 비슷한 것을 찾으려면 분하게도 ‘Japanese Sweet potato’를 찾으면 된다. Trader Joe’s에도 그런 이름으로 팔리고 있고, 맛은 밤고구마도 호박고구마도 아닌 그 중간쯤이더라.

그래도 가끔 고구마를 먹고 싶은 날이면 저 고구마를 사와서 오븐에 구워 먹는다. 작년에는 고구마를 욕심껏 많이 사왔다가 순이 올라오길래 물에 꽂아두고 신나게 순을 키우기도 했다. 물론 순을 심을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고 고구마순을 제대로 먹을줄 몰라 관상용으로 키우다가 겨울에 모두 보내버렸지만 말이다.

작년 작은 화분에서 키운 고구마순


H마트나 다른 한국마트 체인이 열일을 해줘서 우리나라 고구마 품종인 호감미 같은걸 들여와주면 좋겠지만, 이리 쉽게 순을 틔워 여기저기 퍼져나가기 딱 좋은 고구마를 그리 쉽게 이국 땅에 수입하게 해주기는 어렵겠지.

아무튼 올해는 작년의 시행착오를 딛고 제대로된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려고, 일본(…)고구마라고 적힌걸 마트에서 사와서 반을 갈라 물에 담가놓았다.

일찌감치 물에 담가 놓은 고구마


경험상 실같은 뿌리가 살살 나오면 해가 드는 창가로 옮겨주고, 그러면 순이 숭숭 올라오는 것이다. 고구마 순의 색깔로 정확한 종류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 밤고구마는 잎전체가 초록이다
- 호박고구마는 어릴때는 보라색 순이 자라다가 점점 줄기가 자라면서 초록이 된단다

이 고구마는 정확히 무슨 종류일지, 순이 나서 자라며 무슨 색으로 바뀌는지도 잘 봐야겠다.

순이 뿅 나온건 보라색처럼 보이는데



감자는 그로우백에 심을거고 고구마는 프로개님 블로그에서 보고 쭉 따라하고 싶었던 상토 포대에서 그대로 기르는 방법으로 길러볼 예정이다.

출처: 우리강산 프로개프로개 (프로개님 블로그)


문제는 우리 동네 다람쥐와 토끼, 라쿤과 그라운드호그, 포썸들이 가만히 놔둬주긴 힘들것 같다는 것. 포대의 비닐 한겹은 그들의 발톱을 막아주기 힘들것 같다. 열심히 키워서 고구마가 만들어질때쯤 홀랑 털어갈까 걱정이다. 작년에 사고 반쯤 조립하다 치운 스탠드형 미니 그린하우스 뼈대에 올려두고 반 노지 반 하우스 느낌으로 키워봐야겠다.

3월 15일
고구마 두개를 사서 반으로 갈라 네 개 조각을 물에 꽂아 순을 내기 시작했는데, 두 조각정도는 뿌리만 나오고 순이 잘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순이 올라오기전에 너무 밝은 창가로 옮겨줘서 그런듯해서 순이 자라는 두개만 창가에 남겨두었다.


4월 15일
물에 담가놓고 물만 계속 보충해줬는데도 고구마순이 엄청 길게 자라났다. 길이만 주구장창 길어져서 감당이 안되는바, 적당한 길이로 마디를 잘라 물꽂이해주었다.

자기들끼리 엉키고 난리다
여기선 이걸 slip이라고 부른단다



밖에 잘 내다 심어놓고 장기 여행을 다녀온 사이 신나게 다람쥐 토끼 민달팽이의 어택을 받고 장렬히 사망하셨습니다. 다음에 고구마 키울때는 프로개님의 사료봉지 이용법을 써서 단단히 펜스를 친다음 그 안에서 키워야겠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