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왜 살짝 정신을 놓으면 일지가 1주일씩 쌓여있는걸까. 매일 쓰진 않아도 되는데 매일 가드닝 사진을 찍어놓으니 쌓이고 쌓이는 이 사진들을 해소하려고 일지를 써야하는 힘든 굴레에 끼여있다.
오늘은 뒷마당 셰드에 쌓여있던 오래된 non-selective herbicide 종류인 roundup을 뿌리는 날이다. 얼른 얼른 비워서 내다놔야지. 벽돌길 사이에 촘촘히 올라와 있는 잡초들부터 시작이다. 이놈들은 작년에 남편이랑 둘이 쪼그려앉아 다 손으로 뽑아냈는데, 봄이 되니 언제 우릴 없앴냐는듯이 돌아온다.
제초제를 맞아랏.
이렇게 거품처럼 나오는데, 좀 지나면 거품은 사라지고 액체가 풀이 스며든다.
이 날은 아스파라거스가 도착한 날이다. 성급하게 일찍 주문했던 아스파라거스는 냉장고 안에 넣어놨다가 심으려고 꺼내보니 온통 곰팡이 천국이 되어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넣었고.. (이렇게 쓰는 멍청비용이 대체 얼마야) 이건 새로 주문한 것. 아스파라거스 품종은 밀레니엄이고, 2년생 종근을 구매했다.
비닐포장이 꼼꼼하게 잘 왔더라. 대야에 물을 받아 오는 길에 목말랐을 종근들을 반신욕 시켜주었다. 큼직한 그로우백에 흙을 채워넣고 그로우백 마다 2개씩 심어주었다. (사진엔 4개인데, 종근이 10주라서 그로우백 하나를 나중에 추가했다)
아스파라거스는 한번 심어두면 그 자리에서 10년도 자란다는데, 나는 베드에서 주로 키우니까.. 키 큰 다년생 작물들이 부담스러워서, 도라지나 아스파라거스 등등은 그로우백에 일단 심는다.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므로)
Full sun을 좋아한다기에, 우리집에 잘 없는 full sun 명당 포치 계단에 쪼롬히 세워주었다. 나무에 물이 자꾸 닿으면 좋지 않아서 웬만하면 벽돌로 내려놓고 싶은데, 아래 roundup을 뿌려둔 상태라서 일단 오늘은 계단위에 올려두었다.
벌써부터 촉이 올라오려고 하는지, 쪼금씩 머리를 내밀고 있는 애들도 있더라.
아스파라거스는 그로우백 아래로 물이 흥건히 젖어나올만큼 물을 주고, 이왕 호스 뽑은 김에 앞마당 뒷마당 모두 물을 주기로 한다.
미국의 다이소 격인 달러트리(dollar tree)에서 지난 늦겨울에 샀던 글라디올러스 구근들. 도무지 언제 심어야 할지 몰라 내내 묵혀두었는데, 웬만큼 서리도 지나갔겠다, 이날 꺼내 쭉 심었다.
앞마당 최전선 꽃밭은 별도의 베드 없이 키우고 있어서, 원래 있는 흙을 파서 모종이나 구근을 심고 있다. 그래서인지, 땅을 팔때마다 벌레들이 나온다. 땅속에서 아마 겨울을 나는 중인가본데.. 후후 보일때마다 도로 시멘트 바닥으로 내던지는 중.
앞마당에 grub killer도 한번 살포해야겠다. 언제 다 파내고 있냐구 ㅋㅋㅋ 화학전이 최고다. 앞마당엔 먹는것도 없으니까.
뒷마당 베드의 뿌리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아도, 새싹 시기를 지나면 무섭게 키가 크는 녀석들이니, 솎아주는 타이밍을 놓쳐선 안될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다.
근데 성격이 급하면 몸이 두배로 고생이다.
오늘 왜 하필 뒷마당을 지나다가 별목련이 거슬린건지, 또 하필 내 눈에 hand saw가 띈건지.. 그리고 왜 힘내서 자르면 금방 잘라낼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애물단지 별목련 쳐내기.
결국 어깨와 승모근을 희생하며 별목련 가지를 모두 직접 손으로 잘라냈다.
아래는 비포-애프터 사진.
애매한 곳에 널 심은 자를 원망해라. 극락왕생 하려무나..
별목련 가지 잘라내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좀 쉬어볼까 하고 들어가는 길. 뒤늦게 시즌 막바지 할인때 사버린 earth angel 장미가 도착해있는걸 발견했다... 데이비드 오스틴도 그렇고, heirloom roses도 그렇고.. 왜 내가 극한의 가드닝을 하고 쉴려고 할때쯤 도착하는걸까...?
원래 내 생각으로는 집에서 보이는 펜스 앞에 심어, 펜스를 따라 쭉 키울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펜스가 죄다 큰 나무 앞에 있는지라.. 땅을 팔때마다 삽이 깡! 하고 막힌다. 후.. 이 개늠의 나무뿌리 ㅋㅋㅋㅋㅋ 나무 뿌리를 다 끊어버리려고 톱니 달린 삽을 주문할까 고민했다.. 그치만 일단 오늘은 아냐...
1갤런 팟에서 일단은 좀 더 기다려봐.. 엄마가 좋은 자리 찾아줄게 ㅠㅜ?!
(아님 저기 또 레이즈드 베드를 설치해...?!)
이놈저놈이랑 완전 사투를 버리고 나니 너무 피곤하다. 진짜 좀 쉬려고 들어오니 내 침대는 이미 누가 차지하고 있네.. 네네.. 쇤네는 바닥에 누울게요...
French Breakfast radish가 빼꼼하고 빨간머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물을 줬다 안 줬다 한것도 아닌데 약간 토마토 열과마냥 금이 간 자국이 있네 ㅠㅠ 뭐.. 바람들고 그런건 아니겠지. 해 잘드는 곳에서 키우고 있으니, 나비 애벌레들이 기승을 부리기 전에 얼른 다 자라주렴 ♥
Egyptian walking onion은 이제 슬슬 주아를 만드려고 한다. 얘네가 생기기 전에 뒷 쪽 베드에 있던 애들 다 뽑아서 파김치 한번 만들어 먹길 잘했지. 얘네는 번식용으로 쭉 안 건들고 여기서 키워야겠다. 올해는 양분도 잘 채워주면서, 주아를 좀 신경써서 받아봐야겠다.
와 이날 나 진짜 바빴네. 사진을 보니 이날 모종 화분 만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팝송 구절이나, 미드에서 파티할때마다 등장하는 'red solo cup' 제품인데, 이건 파란색이다. 120개 들이 10불대인데, 납땜인두 하나만 있으면 아래 구멍을 쉽게 낼 수 있고, 깊이가 깊어서 뿌리가 깊이 들어가는 모종들 키우기도 좋다. nursery pot 120개 사는거보다 당연히 싸다. 원래도 먹는거 담는 용도니까, 채소 화분으로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 ♥
숨 참고 구멍내느라 호흡곤란 오기 직전이다.
아니 이날 뭘 이렇게 많이 한거야. 사진이 끝이 없네.
아마도 어수리 냉장을 끝내고 마침내 파종한듯.. 근데 과산화수소수 소독 안하고 걍 넣었더니 물 곰팡이 피고 미끌미끌하고 난리. 뒤늦게 과산화수소수 소독을 해줬는데. 소잃고 외양간 청소하는 심정..
이 중에 몇개나 살아남아줄지? 어수리 밥이 그렇게 향기롭고 맛있다는데.. 하나만 살아주라.. 나 먹어보고 싶단 말이다...
이 날 물 불림이나 휴면타파가 필요없는 산나물도 파종했다. 부지갱이, 방아, 참비름 나물 등등.. 난 본투비 도시여자인데 난데없이 미국에 와서 왜 한국 산나물류를 파종하고 키우고 있는지... 나도 그 근원을 알 수 없다..
드디어 tuberous begonia도 쪼오오끄만한 새싹이 올라왔다.
아까 열심히 만든 solo cup 화분에서 자라는 큼지막한 박과 모종들.
허브가든 조성용으로 파종한 각종 허브들도 제각각 머리를 올리고 자라는 중인데, 유독 rue랑 lovage만 미친듯이 발아가 느리다. 얘네 암발아 종자인가..? 수분이 부족한가 싶어서 돔까지 씌워줬는데, 언제쯤 나올런지.. 온도가 문제인가 습도가 문제인가 그냥 내가 싫은건가 알 수가 없다.
죽어라 안 나오는 씨앗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캣민트.. 다년생으로 예쁜 꽃이 핀다길래 여기저기 애매한 곳에 지피식물로 심어주려고 3번 파종했는데 처참히 실패다 ㅋㅋㅋ 그냥 얘는 모종으로 사서 심던가 해야지.. 참, 옆에 있는 epazote도 죽어라 안나온다.
남편이 워크샵으로 오랜만에 회식 겸 외식을 한다기에, 나도 배달음식을 주문했다. 예전에 자주 가던 신촌 타코집 메뉴에 있던 아보카도 튀김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시켜보았다 ♡ 신촌에서 먹던거보다 크기는 한 3배 되는거 같음 ㅋㅋㅋ 물론 가격도 3배.. 하하핫ㅋㅋㅋ
시차를 계산하면 이 날 저녁이 한국에선 어버이날이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드리고, 남편도 부모님께 감사전화를 드렸다. 각자 예쁘게 준비한 꽃과 용돈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엄마한테 보내드린 꽃 화병. 클레마티스, 스카비오사, 라넌큘러스, 튤립과 작약, 카네이션이 한 화병에 있는 아주 진귀한 어레인지였다 ㅋㅋㅋ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