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독일 살땐 밥먹듯이 갔던 옆동네인데 미국 오고 나니 가기가 부담스러워진 스위스. 남아도는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태워서 4박5일 여행을 다녀왔다. 취리히는 신혼여행 갈때 환승을 했어서 간지 얼마 안되었지만..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그린델발트는 거의 4년만에 가는 것.
목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금요일 아침 11시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enterprise 렌트카를 찾고, 그린델발트로 떠났다. 취리히 공항 렌트카 창구는 다 한군데 몰려있는데, 입구에는 삐까번쩍한 sixt 창구가 4-5개가 있고, 우리가 예약한 enterprise는 다른 업체 2개랑 같이 창구 하나를 쓰는데, 직원이 하나뿐이라 체크인부터 오래걸렸다. 차를 찾으러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어떤 인도계 아저씨가 관광객이 살법한 NYPD 티셔츠를 입고는 웬갖 진상을 부려서.. 뒤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차 받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ㅋㅋㅋ 감정표현 잘 안하는 스위스 사람들인데.. 여기 직원이 오죽 시달렸는지, 우리 앞을 지나가면서 그 아저씨를 보고 'Fx..ck..'하더라 ㅋㅋㅋㅋ 재미난 구경이었으나.. 다음부턴 좀 비싸도 sixt 빌리기로...
남편이 유럽에서 렌트할때마다 수동 말고 자동! 전기차 말고 가솔린!을 항상 외치는데, 이번에는 무사히 오토매틱 & 혼다 suv를 받았다. 근데 시동이 안 걸려서 뭐야? 했는데 알고보니 하이브리드 차였음 ㅋㅋㅋ 너무 조용해서 당황..
그린델발트 가는길. 스위스나 독일이라면 네프론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번쯤은 달려줘야지. ㅎㅎㅎ
남편 말로는 50km/h 속력을 넘어갈때 전기->가솔린 소모하는 걸로 바뀌는데, 그 길목에서 차가 덜컹!하는게 느껴진단다. 그리고 우리 차에 비해서 힘이 딸린다는 듯 ㅋㅋ
예전에 그린델발트에 올땐 glacier 호텔에 묵었는데, 이번에는 급하게 여행 일정을 잡느라 빈방이 없더라. 차선책으로 예약한 Bergwelt Alpine Resort. 그래도 방은 북벽(Eiger)이 보이는 쪽으로 예약했다. 방에서 보이는 뷰는 Glacier를 못 따라갔지만.. ㅎㅎ 바도 아이거 뷰라서, 이 호텔에 예약한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우리는 산세를 보면서 7개의 봉우리 이름으로 지어진 칵테일 중에서 각자 하나씩 골라 맛볼 수 있었다.
방에서 보이는 아이거 뷰는 이런 느낌. 시차가 6시간이라 적응이 무척 힘들었는데, 낮잠 자고 일어나서 고개를 돌리면 황홀한 산이 보여서 행복했다.
그래도 그린델발트까지 왔는데, 산책이라도 가자며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거는 흐린날이었음에도 여전히 웅장하고 멋있었다. 사진에 담기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게 2만배는 더 멋있는것 같다.
스위스는 어딜가든 소가 많다. 소떵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면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난다. ㅎㅎ 우리나라나 미국 소들은 짙은 얼룩소나 황소가 많은데, 여깃는 애들은 투게더 아이스크림에 콩고물 뿌려놓은것 같은 색감이다.
스위스는 들판에 핀 꽃들도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구성. 이건 이렇게 만들려고 일부러 씨를 뿌려도 이렇게 안되겠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인지, 강물이 희뿌옇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깊은 청록색이었는데, 두 줄기가 섞이면서 만들어낸 강물의 경계선이 그림같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나름 호텔 주변에는 조경을 신경써서 해놨다.
귀여운 비올라도 자주 보이고 (색감 대체 무슨일..)
몇살짜리인지 너무 궁금한, 풍성하게 핀 루핀(루피너스)도 어여쁘다.
길가 가드레일 아래 자라는 이름 모를 잡초는 구억배추마냥 씨앗을 맺고
일본에서 봤다면 개구리 신 모시는 사당인가 오해했을 비주얼의 정원 장식.
작은 조약돌로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것 같은 옷을 입은 고양이 조형물.
풀색 옷을 입은 거위찡도 안녕!
여기서도 지피식물로는 플록스가 짱이구나 ㅎㅎ
우리집에서 비실거리는 매발톱과 달리 우리 호텔에 심어져있는 요놈은 잎도 크고 꽃대도 높은데 꽃도 다글다글하게 달려있어서 부럽다.
Coop에 물 사러 들른 김에 씨앗 구경도 하고 (특별한건 없었다 ㅎㅎ)
스위스에 왔으니, 낙농업 산물을 즐겨야지 싶어서 커피도 사와서 먹었다. (스위스에서 찬 커피를 먹는 방법은 이 방법 뿐이다 ㅋㅋㅋㅋ)
그린델발트에서 가장 만족한 레스토랑 - Hotel Glacier 내부의 레스토랑이다. 예전에 이 호텔에 묵을때는 레스토랑이 만석이었고, 호텔에 빈방이 없으니 레스토랑 예약이 가능한.. 둘다 가질 순 없는 존재인가보다 ㅋㅋㅋㅋ
우린 5-코스 메뉴를 예약했는데, 셰프가 미나리과 짱팬인지, 코스마다 펜넬, 딜의 향연이었고, 제철인 아스파라거스도 자주 등장했다. 내 가든에 심어둔 채소가 자주 등장해서, 어떻게 요리해서 먹으면 될지, 어떤 재료랑 잘 어울리는지 엿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펜넬크림, 아스파라거스 장식있는 한입거리 & 바사삭 부서지는 미니 파이시트 위에 토마토 소스와 두 색깔의 쥬키니를 말아 올려둔 한입거리. 후자는 라따뚜이같은 맛이 났다!
시작은 샴페인 한잔-! Brut이라고 했는데 좀 달았음ㅋㅋㅋ
우리 서버 Gerry가 강력히 추천한 스위스 와인. 우리는 Valais 와인을 좋아하는데, 자기 믿고 이거 한번 마셔보라며 ㅋㅋㅋ Flasch라는 새로운 지역의 와인을 가져다줬다. 자기가 여기 와이너리 아들이랑 지인이라며 ㅋㅋ 깨알 인맥자랑도...
피노누아라는데 첫 맛과 향이 무척이나 스모키했음. 장작 바로 옆에서 와인 마시는 느낌이랬더니 맞다고 그게 매력이래 ㅋㅋ 좀 신기했던건 보통 열어놓으면 처음 맡았던 그 첫잔의 맛과 향이 다시 나긴 어려운데, 두번째 잔을 새로 따르면 첫잔의 스모키함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잔에서 산화되어 다시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새로 거치는.. 재미난 매력이 있는 와인이었다.
남편의 최애 메뉴였던 머쉬룸 + 펜넬 폼 + 피치 장식. 저 볼 안에 아란치니에서 쌀을 버섯으로 바꾼것 같은 느낌의 튀김이 들어있었다. 버섯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남편인데도, 이게 제일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딸기 소르베와 실란트로?였나 암튼 그런 폼.. ㅎㅎ 난 미나리과 짱팬 고수 러버 아스파라거스 짱좋파여서 여러모로 너무 행복한 코스였음 ㅎㅎㅎ
수란같이 살짝 굳힌 노른자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쥬키니를 잘게 썰어 깔아놓은 디쉬. 한번에 다 떠서 먹으라고 했다.
빵은 그린델발트의 어떤 베이커리 산이라고. 전날 저녁에 BG's grill에서 먹은 빵이랑 비주얼이 같아서 같은데서 떼오는거 아냐? 했는데 3배로 맛있었다.. 하드롤 짱팬 광광 울고요..
신선한 채소가 가득가득 다양하게 나와서 무척 좋았던 이 코스.
중간에 커트러리가 넘 예뻐서 어디껀지 기록. 나중에 찾아보니 5피스 세트가 100불이 넘네 ㅋㅋㅋㅋ
메인메뉴 1
무지개 송어를 로스티드 캐비지로 샌드위치처럼 만들고 위에 새우와 관자를 구워 얹은 요리. 남편은 송어만 먹으면 살짝 비릿한 향이 났는데, 캐비지랑 같이 먹으니 마법처럼 그런 느낌이 없어진다고 신기해했다.
메인메뉴 2
그리고 나의 최애 램!!!!!!
메인 고기가 양고기인걸 보더니 남편이 막 웃는다. 양고기 킬러 취향 맞춰서 이 레스토랑 참 잘왔단다.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양고기 좋아해서 여기저기 램스테이크 자주 시켜먹고 다녔는데.. 여긴 차원이 다르다. 세상에. 제일 큰건 램찹, 중간 크기는 램 필렛, 제일 작은건 무려 램 필렛미뇽이란다. 램에도 그런 개념이 있었단 말야? ㅋㅋㅋ
여기서 제일 좋았던 점은, 우리가 이태백도 아니고, 자린고비 희망편도 아닌데.. 술 한잔, 맛잇는거 한 입 그리고 창밖을 한번 쳐다보면서 식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캬. 진실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디저트 1
펜넬크림 위에 편으로 썰은 아스파라거스 피클을 얹고, 그 위에 딸기소르베가 올라간 요리. 펜넬크림 지이이이잉인잔ㅇ나어미나얼아너ㅣ마ㅓ짜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나 펜넬 이렇게 좋아하는줄 처음 알았네.
디저트2
우리는 언제나 그라파 + 에스프레소로 식사를 마무리하지. 이탈리아랑 일 많이 한 남편 때문에 나도 덩달아 이렇게 되어버렸음 ㅋㅋㅋ
커피 옆에 주는 크림 & 슈가 용기도 넘 귀여워.
호텔이 아랫쪽에 있어서, 우리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꽤 험준한 언덕이었다. 중간에 놓인 빨간 벤치에서 한숨 돌리고 올라갔다.
올라오는 길에 본 달팽이들. 비온 뒤라 여기저기 다 기어나와있다. 우리집 마당에 있는 애들이 아니니 별 신경은 쓰이지 않았지만 땅이 다르다고 얘네의 비주얼도 미국과는 조금 달리보였다.
그린델발트에서 마지막날 아침. 옆에 프로셰코가 있어서 먹을까-했지만 운전해야하는 남편이 안 마실거니까, 나도 의리로 안 마심 ㅎㅎㅎ
호텔 체크아웃 후, 잠깐 독일에 우리 살던 곳에 넘어갔다 올까, 고민하다가 요즘 국경에서 짐검사도 자주 하고 빡빡하게 군다길래 포기했다. 그냥 취리히로 돌아와서 공항 근처 래디슨 블루에 체크인.
저녁 먹기전 맥주 한잔 할까 해서 호텔을 나섰는데, 웬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곳을 발견. 뭐 신기한거 하나 했는데 그냥 아이스크림 집이었다. ㅋㅋㅋㅋ
저 집 옆 Grazie라는 곳에서 칼라마리 + 맥주 2잔과 아페롤 스피릿 2잔을 마셨는데 여기가 은근 맛집이었다. ㅎㅎㅎ
그리고 우리는 이 아름다운 여행의 마지막 저녁 식사로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일식을 먹을까 한식을 먹을까 하다가 고른..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여기부터 불길..) 한식당에 가기로. 퓨전이라길래 좀 불안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일식도 한식도 아니고, 감히 말하건데 이건 음식도 아님. 취리히 여행 가시는 분들은 아무리 구글맵 평점이 높아도 여긴 가지 마세요. Miss Miu 완전 최악 -_-ㅎㅎㅋㅋㅋㅋㅋ
돌아오는 길에도 허망함이 풀리지가 않음; 결국 Coop 가서 와인과 치즈를 사서 호텔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리 최애 치즈인데, 보스턴에선 수급이 일정치 않아 슬픈 Tete de moine. 종류별로 팔아서 부럽다. 한 박스 사가고 싶지만 세관에서 잡혀가겠지 ㅋㅋㅋ
호텔에서 먹은 Coop 안주+사발면+와인. 이게 Miss miu보다 3천배 맛있었다.
취리히에서 마지막 날. 여기 사는 친구 다이아나 & 아이반과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 전에 Coop에 내려가 필요한 걸 사기로 한다.
난 뭐 스위스에서 사는 거 맨날 정해져있다.
1) 마요네즈 (토미건데, A la francaise가 맛있음)
2) 스위스 또는 생떼밀리옹 와인
저만큼 + 와인 3병 샀는데, 뒷 여자가 "나 2개인데 먼저 계산해도 될까?"하고 물음 ㅋㅋ 그래 먼저 가셔요.. 난 오래 걸려.. ㅋㅋㅋㅋㅋ 암튼 저렇게 보따리상처럼 꾹꾹 눌러넣고 짐가방에 착착 채워넣었다. 이제 짐싸기엔 이골이 났다 이 말이야.
번외 1.
취리히 공항 돌바닥 개 딴딴데스네.
보안검색대에서 떨어뜨렸더니 액정 나갔다 ^^ 엘라가.. 제발 필름이라고 해줘.. 했지만 아냐.. 필름따위 이미 깨먹은지 오래지 호호호호....
번외 2.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스타얼라이언스 제휴 항공인 스위스에어 예약해서 다녀온 건데 스위스에어 새삼 참 좋다. (중간에 꼭 초콜렛을 줘서 그런건 아니고..)ㅋㅋㅋ 24시간 전에 열리는 체크인 때 추가 요금 없이 extra leg room seat 선택해서 앉게 해준다. (이전에 이 좌석을 돈 주고 구매하는게 오히려 안됨ㅋㅋㅋ 왜죠?) 게다가 비행 중에 메시지 정도 주고 받는 와이파이는 무료제공이다. 스위스 항공 로또라도 맞았나?;; 루프트한자/오스트리안 에어랑 합병한 뒤에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나 본데?ㅋㅋㅋㅋㅋㅋ 암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