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굿모닝! 커피를 내려 남편과 느긋한 아침을 먹는데, 딸기 타워에 뭐가 파닥파닥하는게 보여서 자세히 보니.. 세상에 허밍버드가 한련화에 뿅뿅 꿀을 따먹고 있는게 아닌가.. 세상에.. 펜스테몬이라 캄파뉼라를 심어야만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예쁘다. 실물 영접하니 마음이 벅차올라 핡핡 대며 영상 찍음.. ㅋㅋ (남편은 늘상 보던거라 그냥 오.. 뭐가 또 왔나보네.. 함)ㅋㅋㅋ
내년엔 허밍버드가 좋아하는 꽃 백개 심는다 진짜.. ㅠㅠ
아침부터 엄마가 자기 대신 다른걸 보면서 학학 대고 있는 걸 본 질투쟁이 스토커 고양이의 콧김 소리가 심상치않다. 오늘은 집을 비우고 여행도 갈 예정이라, 미리 둥기둥기해서 달래놔야만 한다.
달리아는 나날이 더 많은 송이가 피어나고, 종종 새 색깔도 보여준다. 같은 씨앗 패킷에서 발아시킨 애들을 모아 심어놨더니, 근처에 있는 애들이랑 생김새와 색깔이 비슷한 경우가 많아 아쉽다. 괴경을 다시 파내서 저장할때는 종류보다는 생김새와 색깔을 위주로 분류하고, 내년에 다시 심을 때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배치되게 신경써서 심어줘야 더 예쁠 것 같다. (과연 나의 세심함이 귀찮음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달리아는 나름 괴경을 파내고 저장했다가 다시 심기만 한다면 다년생이라고 봐줄 수 있는데, zinnia는 얄짤없이 1년생이다. 뿌리째 파내서 옮겨 심으면 잘 살아남지 못하는것도 확인했고.. 그럼 heirloom인 종류들은 열심히 씨앗을 채종해놔야겠다 싶다. 특히 redman cactus 어쩌고 zinnia는 예상치 못한 대륜종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바람에 흩날리면 진짜 시선강탈이다. (지나가는 댕댕이들이 정신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음 ㅋㅋㅋ)
올해 꽃을 피우진 못했지만 꾸역꾸역 잘 살아남고 있는 내 루핀. 이번 가을에는 아예 땅에다 파종해서 겨울을 나게끔 해야겠다. 보아하니 얘네도 이식을 어지간히 싫어하는 모양이라..
이 날은 남편의 금쪽같은 휴가 중 유일한 바깥일정, 뉴햄프셔 마운트 워싱턴 근처에 있는 호텔로 떠나는 호캉스날이었다. 뉴햄프셔가 메사추세츠와 가깝기도 하고, 저번에 캠핑장 갈때 보니 한 시간정도만 운전해서 올라와도 한적하고 딴 세상 같아서 좋았기에.. 이번에도 아무 호텔이나 좋아보이는 걸 찍어 그냥 휭 왔다.
나도 날씨요정, 남편도 하레오또코 출신이라 둘이 여행가기만 하면 이렇게 날씨가 쾌청한게 보통이다. (우리 결혼식은 앞뒤로 비가 왔지만 우리 결혼식날만 그렇게 새파랗고 쨍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야외결혼식이었음ㅋㅋ)
방에서 보이는 뷰가 거의 윈도우즈 옛 배경화면 언덕 수준이다.
이 리조트는 스키장에 오는 사람이나, 산행을 오는 사람들이 묵어가는 곳이라 특별할 것 없이 무난무난했고, 비수기인지 사람도 적은 편이었다. 식당이랄것도 주변 걸어갈 거리에는 없고, 리조트 안에 하나뿐이어서 우리 저녁식사도 그리로 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 리조트가 퍽 맘에 든 이유는, 앞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만큼이나 리조트 곳곳 조경이 참 예뻤기 때문이다. 특히 꽃과 나무를 고른 정원사의 취향이 나랑 정말 정말 비슷했다. 우리집에 있는 zinnia, gazania, lupine, salvia가 색깔까지 똑같은게 군데군데 보였다. 심지어 심어놓은 위치도 비슷해서 소소하게 재밌었음.
마당에 조경 구경만 해도 즐거운 리조트. 사이사이 우리집에 없는 식물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다. 아래는 넘 귀여워서 찍어온 식물인데 아마도 perennial salvia 종류인거 같다. 뭔지 찾아내서 우리집에도 심어야지 후후
리조트 뒷편에 있는 데크에는 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firepit에 불을 붙여두었더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대낮부터 칵테일과 맥주를 먹고 있는 걸 보니 참 여유롭고 좋았다. 이 데크와 연결된 레스토랑이 이 리조트의 유일한 식당인데, 데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로비와 이어진 바가 있고, 더 안쪽에는 테이블이 즐비한 레스토랑 공간이었다.
로비와 연결된 바 쪽에 앉아 통창으로 보이는 쾌청한 하늘을 보니 이유모를 답답함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 로컬 양조장이 많은지, tap beer 리스트가 훌륭했고, 남편과 내가 종류별로 몇개 골라 먹어봤을때 맛도 꽤 훌륭한 편이었다. 오는 길에 양조장이나 들를까하다가 다음날 피곤해져서 패스했지만 다음에 좀 체력이 비축된 상태에서 간다면 한번쯤 들려봐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훌륭한 맛이었다.
바 뒷편 장에 있는 세로 라벨 와인이 예뻐보여서 시킬까, 했는데 자세히 보니 끼안띠 와인이어서 패스. 왠지 나랑 안 맞아..
그리고 이 호텔 시트가 정말 너무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남편이 자기말로는 까탈스러운것 없이 무던하다는데, 사실은 소재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라 좋은 건 기똥차게 알아보고 좋다고 하는 사람인데.. 이 호텔 침대 눕자마자 '헉 진짜 부드럽다'고 하더라. 출장은 이골날만큼 다니니 호텔도 엄청 많이 다녔을텐데, 저렇게 말하는거 보면 진짜 좋은게 확실하단 말이지.
당장 시트를 까서 제조원을 확인한 나 ㅋㅋ 이거 개인이 구할 수 있는걸까?
(놀랍게도 그렇다. 웹사이트 찾음 ㅋㅋㅋ 근데 판매는 여기 사이트에서 안하는듯.. 다른 사이트가 나옴ㅋㅋㅋ)
https://berkshirehospitality.com/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방에서 좀 쉬다가, 예약해둔 저녁 시간이 되어서 다시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진정한 호캉스란 원래 풍경 좀 보는척하다 맥주마시고, 좀 뒹굴거리다가 밥먹으러 가는 것 아니겠는가.
예전 버몬트 여행에서 시켰던 윙이 생각나 주문한 치킨과 gibbs 와인. 남편이 description을 보고 골랐는데, 나는 그저 이름이 깁스여서 좋았다. 서버가 와서 따라줄때 "It reminds me of my favorite character from NCIS"라고 남편한테 말했더니 서버가 자기도 favorite TV series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뉴햄프셔는 놀랍도록 백인 비율이 높고, 호텔까지 오면서도 동양인은 커녕 흑인도 한명 못 봤는데, 이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농담을 나누고 나니 좀 덜 이방인 취급 받는것 같아 좋았다.
(물론 오는길에도, 호텔에서도 바에서도 다들 친절하긴 했음 ㅋㅋ 그냥 나혼자 느낀 위화감이었달까?)
메인으로는 서버가 추천한 관자구이를 시켰는데, 관자가 고기보다 맛있었다 진짜. 집에서 관자 이렇게만 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ㅋㅋ
메인으로 주문했던 저 고기는 뭐였더라? 그닥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후식으로 먹은 저 꾸덕한 초코는 가끔 술과 고기를 잔뜩 먹이고 초코까지 먹이는 남편의 고약한 취향이다..ㅋㅋ
8월 8일
남편이 너무너무 만족한 침대에서 잘- 자고 일어나, 어제 우리를 뻗게 만든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 주중에 숙박한 특전으로 아침식사 30불 쿠폰을 줬는데 에그베네딕트를 골라 먹으려다 랍스터 베네딕트가 눈에 띄여 그만 그걸 시키면서 30불을 훌쩍 넘겨버렸다. ㅋㅋ 남편이 "비싼것도 먹는다" 하며 웃음 ㅋㅋㅋ
양은 어마어마했고 맛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정직한 맛이었다. 난데없이 저 옆에 감자 튀김이 넘 특이하고 맛있어서 손 가는대로 둘이서 주워먹다가 결국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일어나면서까지 "배불러 배불러"하게 되었다는..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만끽하며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체크아웃 하기전 아쉬운 마음에 무료 커피를 한잔씩 따라 데크도 한번 더 나가보고,
어느새 나는 이 호텔의 조경을 다시 관찰하고... ㅋㅋ (저렇게 자갈/잔디 구분 해놓은 거 넘 예쁘다)
오는 길에 양조장에 들르자!던 야심찬 계획은 예상치못하게 막히는 도로를 보면서 무산되었다. 은근히 이제는 집 떠나면 힘들고 요상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집에 돌아오니 예상한대로 고양이가 잔뜩 삐져있었다.
삐진 고양이부터 달래고, 노비들이 집을 비워 기분이 상하신 다른 고양이 수발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이제서야 카테고리에 맞는 얘기 시작)
그간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인지, 오만 토마토들이 쩍쩍 갈라져있고, 고추 줄기에 종종 나방 애벌레나 달팽이가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갈라진 건 얼른 수확해주었다.
올해 농사의 최대 성과중 하나는 sweet pepper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violet sparkle, 오른쪽은 lesya pepper인데, 이 외에도 blot이나 jimmy nardello 같은 sweet pepper들이 하나같이 너무 맛이 좋고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더라. 우리나라에서 파프리카를 넣는 모든 요리에는 sweet pepper를 넣을수 있달까? 다만 그 파프리카 특유의 슬큰?한 향이 없고 좀 더 기분좋은 향이 난다.
수세미, 호박, 토마토가 타고 올라가는 중인 아치는 어느새 열역학 제2법칙을 너무너무 잘 지키는 모양새가 되어있다. 조만간 2법칙을 한번 거슬러 보아야겠다.
Burpee에서 산 super 100 hybrid 토마토는 내가 위치를 잘못 심은건지, 아님 그냥 유명세가 부풀려진건지? 메사추세츠가 문제인건지 우리집 햇빛이 부족한 환경 탓인지 (all of the above 가능성...!!) 생각보다 주렁주렁 달리진 않는다.
미니수박이 달려서 무늬가 생긴 모양새가 제법 큰 수박 같다. 근데 달린 시기나 위치로 보아 애플수박만큼 커지긴 어려울 것 같지만.. 넘 예쁘게 생겼으니 ㅋㅋ 그저 ornamental하게 마당 한켠을 지키기만 해줘도 나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쩍쩍 갈라진 토마토, 그리고 점점 커지는 속노란 참외.
꽃이 만발했던 고수들은 밀원식물 짬바 어디 안가는지, 거의 모든 알맹이가 수정되어 씨앗이 맺혔다. 저대로 살살 말려 일부는 다시 심고, 일부는 요리에 쓸 coriander seeds로 수확해야겠다.
1박2일 여행 다녀왔을 뿐인데, 수확바구니가 풍성하다.
늦여름 게으른 호캉스 여행에서 애매한 시간에 돌아와 마트에 가기도 귀찮아도 마당에만 나가면 먹을 것이 금방 풍족해지는 이 삶이 경이롭다. 별건 아니고, 대단한 산해진미도 없는데다가 심은것들에 비해 수확량 yield도 형편없지만 그저 즐겁다.
남편과 나 - 우리 둘, 그리고 종종 작물 훔쳐먹는 둘째 고양이 녀석과 그걸 한심하게 보는 첫째 고양이 딸램이 함께, 오붓하게,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