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보스턴 게으른 농경일지

2024년 8월 5-6일 연중행사 냥빨하기 / 전봇대 파손으로 인한 정전 사태 /늦여름은 달리아의 계절 / 샴페인 포도를 키워볼까

게으른보농 2024. 9. 4.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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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 창문이 희뿌옇다. 온도차이가 극심해서 생기는걸까? 창문 바깥에 물이 응결되는걸로 보아 집 안은 너무 시원하고, 바깥이 찜통이란 말이렸다. 

 

 

 

보일러실에 준비중인 김치가든(가칭ㅋㅋ)은 온도가 크게 올라가진 않는 모양이다. 온도변화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긴 어려워서, 어플 연결과 기록이 가능한 스팟 온도계를 주문해뒀다. 

 

 

 

원래 7월쯤 고양이들을 날잡고 씻기는데, 올해는 1달가량 늦었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쁜일도 많았고, 남편의 휴가가 8월로 밀렸기 때문. 모처럼 받은 일주일의 휴가기간을 냥빨에 투자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큰 맘먹고 큰놈부터 작은놈까지 오전중에 다 빨아버렸다. 첫째녀석이야 이것도 10년 넘게 당한?거라 그냥 애옹애옹하고 마는데, (심지어 냥빨이 끝나면 좀 시원해함) 두번째 녀석은 정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예전 집에 살때는 너무너무 소리를 질러대서 동물학대 신고가 들어오는게 아닐까 조마조마했다고.. 

 

 

 

 

그래도 이것도 몇번 같이 하니까 실력이 는다. 남편이 아예 두꺼운 옷을 입고 욕조에 앉아 고양이들을 안고 있으면, 내가 얼른 물을 뿌리고 하는 식이다. 욕조가 없는 집에서 할땐 꽤 난이도 높은 일이었는데 (갑자기 샤워기 물을 틀거나 하면 두배로 흥분하니까) 욕조에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옆에 깨끗한 물을 따로 받아두면 훨씬 수월하다. 

 

 

 

정신없는 냥빨이 끝나고, 고양이들은 적당히 타월 드라이 정도만 마치고 놓아주었다. 집 안의 에어컨 강도를 줄인다음 (감기걸리면 안된다!) 알아서 그루밍하게끔 풀어두면 어딘가 구석에 박혀서 털이 90% 정도 마를때까지 몸을 핥고 짜증내고 그러다가 나온다. (이래서 냥빨 전 집청소를 먼저 해야한다)

 

 

고양이들이 자기 몸을 말리는 동안 나는 앞마당 꽃들을 구경하러 나왔다.  heirloom cosmos 중에 꼭 피워내보고 싶었던 seashell cosmos가 드디어 피었네. 자세히 보면 꽃잎이 tubular해서 신기하다. 이것도 분홍색도 있던데.. 여러 herloom cosmos mix된 씨앗을 샀더니, 뭐가 seashell로 피어날지 몰라 한참 기다렸다. 이건 잘 보고 채종까지 해놔야지 ㅎㅎ 

 

 

 

 

냥빨을 무사히 끝내고, 남편도 나도 휴가의 서막을 평화롭게 잘 즐기던 중. 갑자기 온 집안 전기가 내려갔다.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하고 길바닥으로 나가보니 너나할것 없이 동네사람들 전부 길에 나와있음. 알고보니 어떤 차가 동네 전봇대를 들이받아서 전봇대가 반파되었다고; 

 

 

 

사고 현장이 좀 떨어진 곳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더 가관이었다. 저 전봇대를 들이받았다는 차는 보네트 앞부분이 거의 다 찌그러진 모양인데.. 저녁 7시에 음주운전이라도 한건지? 흠. 사연이 궁금해서 로컬 뉴스를 엄청 찾아봤는데 이런건 뉴스거리도 아닌지 검색도 되지 않았다. 

 

처음엔 9시쯤에 복구가 된다더니 점점 복구 시간이 뒤로 밀려났다. 냉장고에 쌓아둔 음식은 어쩌지? 김치냉장고는 더 문제인데.. 밤에 더운데 에어컨 안되면 어쩌지? 하는 별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남편이랑 나랑 이때 얘기한게.. 참 인간은 무력하구나, 전기 하나 나갔다고 할 수 있는게 없구나 하는 내용이었다. 

 

복구작업이 어떻게 되어 가나 궁금해서, 밖에 나가보니 퇴근 후 뒤늦게 이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내일 사람을 10명 초대했는데.. 10인분 고기 marinate 해놨는데 어떡해!!!"하며 절규중.. 아이고 아주머니 ㅠㅠ 지금이라도 아이스박스.. 사오세요 ㅠㅠ 아님 발전기라도... 아주머니가 다음에 스토브는 꼭 가스로 바꾸실거라고.. 전기 나가도 가스로 요리 가능할 거 아니냐고 ㅋㅋㅋ 

 

안타까운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고 위로해드린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Hey, I love your garden!"이라거나 "You did wonderful job with your flowers!" 뭐 이러면서 칭찬을 건넨다. 우리 집 앞에 서있던 것도 아니고 가는길이었는데 내 얼굴만 보고 어떻게 아는거지 ㅋㅋㅋ 내가 맨날 나가서 쪼그리고 호미질하던걸 봤나 ㅋㅋㅋㅋ 암튼 내 고생을 알아봐주니 기분은 매우매우 좋았다!

 

 

칭찬 받고 들어오는 길에 색색깔로 피어있는 달리아 구경. 전기는 나가고 나도 냉동실에 돈까스가 걱정이지만.. ㅋㅋ 칭찬을 잔뜩 받으니 달리아가 두배세배 예뻐보이는 마음~

 

 

 

 

우리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우리 집이 있는 구역의 전기는 이 날이 가기전에 복구되었다. 최종적으로 공사를 마친건 2시가 넘어서였다는데, 그나마 가까운 곳이었어서 빨리 돌아온 모양이다. 냉장고의 음식들 걱정은 덜었지만, 다시 이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찔한 날이었다. 

 

냥빨이 끝나고 퐁숑퐁숑해진 첫째녀석.

 

 

 

 

 

전기가 돌아온 기념으로 정도전 드라마를 연달아 보았다. 이날의 안주는 샴페인 포도. 요거 작고 달고, 씨가 없어서 완전 별미다. 약간 머루 포도 같은 느낌이랄까..? Black Corinth grape라고 하기도 하고, Zante current로 부르기도 한단다.  이것도 샤인머스켓처럼 씨앗 없애려면 지베렐린 처리 해주고 그래야하는걸까? self-pollination은 된다고 하니, 9월에 마당 나무들 자르고 나면 fruiting size 3-yr old vine으 하나 주문해봐야겠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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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아침에 눈을 뜨니 떡하니 둘째놈이 명치께에 눌러앉아 "나한테 어제 왜 그랬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리 내가 널 좀 씻겼기로서니.. 엄마를 죽이려고 하면 되겠니? 너 20파운드짜리 고양이인데.. 명치는 급소라고.. 그런데 앉아있지마.. ㅠㅠ

 

 

 

일어나서 둥기둥기해주니 언제 그랬냐는듯이 삐진게 좀 풀린 모양이지만.. 언제 다시 서러워질지 모르는 일이니, 오늘은 시간 맞춰 공짜간식을 잘 챙겨주어야겠다. 

 

 

 

점심은 바질을 뜯어다가 페투치네 면으로 파스타. 허브랑 깻잎은 역시 집에서 키워서 금방 요리에 뜯어넣는게 최고다. 마켓에서 파는거랑 향기 자체가 다르달까. 

 

 

 

 

파스타를 먹고 힘내서 뒷마당에 물을 주러 나갔다. 자세히 보니 무섭게 자라난 수세미 꽃이 피어나는 중이다. 아무래도 수꽃인듯 한데 8월이 지나서 피기 시작하면 언제 암꽃이 발현되고 수정되어 열매가 달리고 말라서 천연수세미를 만들어줄건가!!!!!!!!!! ㅠㅠ 수세미는 아무래도 3년째 실패인 모양이다. 

 

 

 

 

한여름이 되니 별별 벌레가 다 보이는 마당. 

 

 

 

 

Ancho white cherry tomato는 혼자 깊은 베드에 심겨진 호사로 여기저기 미친듯이 곁순을 뻗고, 곁순마다 주렁주렁 커다란 열매들을 포도처럼 달아낸다. 곁순 정리는 옛날 옛적에 포기했는데도 곁순을 죄다 정리하고 그로우백에 애지중지 키우는 애들보다 훨씬 잘 크고 열매도 많이 달린다. 이럴때 가드너가 느끼는 허탈함이란! ㅎㅎ 내년엔 무조건 토마토들은 베드에 심을것... (북정은 메모짤)

 

 

 

 

귀찮다고 지지대 안 세워준 고추들은 이러저리 여름바람에 치여 넘어지고 눕고 난리다. 

 

 

 

오이는 온 trellis를 덮으며 수세 확장 중이고. 

 

 

 

마늘 베드에 옮겨심어둔 고추들은 이제 제법 키가 커졌다. 그나마 햇빛이 잘 드는 곳이고, 마늘 키운다고 이 비료 저 비료 다 때려넣어둔 다비존~이라 버프 받고 잘 크는 모양. 

 

 

 

다 뜯어먹혀진 참깨들 옆에 심어둔 albino bulnose bell pepper의 첫 열매가 커지기 시작했다. 키가 저리 작은데 열매를 달까 싶었는데, 키와는 무관한 모양. 

 

 

 

 

어제보다 더 활짝 핀 겹달리아는 두배 세배로 예쁘고 

 

 

 

 

잊을만 하면 하나씩 피어주는 오크라 꽃도 무궁화꽃 보듯 하고 있다. 

 

 

 

 

어제 전기가 나가며 그 안위를 제일 걱정하게 만든 나의 치즈롤까츠. 오래 뒀다가 또 얘네를 잃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바로 튀겨버렸다. 튀기는건 고된 일이지만, 먹을 때는 천상의 맛이다. 홀푸즈에서 할인한다고 대충 앞다릿살 사다가 했는데, 아무래도 힘줄이 많아 고기가 잘 펴지지 않고, 군데군데 너무 두껍게 말리긴 했다. 다음에는 꼭 등심으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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