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계 드루이드 최고봉으로 유명한 프로개님. 그 블로그에는 만우절 바나나 키우기 때문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 전인 금전수(ZZ plant) 키우기로 유입된 사람이다. 해외에 살면서도 본가로 배송시키면서까지 모두의 pH 책도 사고, 이번 텀블벅 펀딩으로 '드루이드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민트버젼도 주문해놨다. 매번 내 택배를 받아주시는 엄마는 공부와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내 책이 도착할때마다 '얘가 또 뭘하려고 하나'하고 한탄하시는 중.
뭐든지 펑펑 잘 길러내는 그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아무(?)씨앗이나 잡아 발아시켜도 거대한 식물로 키워내는 게 제일 부럽다. 문제는 이 블로그를 보고 있다보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것 같은데'하고 따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라하기 시작한게, 레몬 발아시키기, 애플망고 씨앗 발아시키기이고, 올해는 고구마 키우기와 페퍼론치노 고추 키우기만 할 예정이었다. (페퍼론치노는 말린 고추에서 1000립씩 꺼내서 발아 도박을 할 수는 없어 bird's eye chili 씨앗을 주문했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퀘스트. 아몬드 키우기.
고흐의 아몬드 꽃나무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직접 발아시켜 키우면 집 안에서 그 꽃을 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할 수 있다는 이 착각이 제일 무서운 점) 게다가 아몬드는 건조에 강하다고 하니, 공기난방을 하는 미국집에 안성맞춤인 식물일 것 같았다.
하필 또 홀푸드마켓에 로스팅이나 염지하지 않은 생 아몬드를 팔고 있어서 아직 우리집은 장 볼 필요가 없는데도 아몬드하나 사기 위해 괜히 이것저것 함께 장바구니에 넣어 냉큼 시켜버렸다.
2월 8일
반나절도 안되어 도착한 생아몬드, 드루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2시간만 불려서 속껍질을 깠다.
빈 토분을 골라 흙을 퍼담고 가지런히 배열해주었다. 새싹 떡잎이 갈라질 부분을 위로 두고 흙을 살살 덮어주었다.
그러나 며칠 후 흙 위로 올라온 하얀 곰팡이들을 발견했다. 곰팡이가 점령한 씨앗만 제거해주려고 흙을 파보니 심었던 씨앗 전부가 곰팡이 어택을 받고 한 뭉치로 뭉쳐있더라. (너무 처참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3월 3일
아몬드 2차 파종 시작. 물에 안 불려도 발아된다기에 이번엔 바짝 마른 상태로 흙에 꽂아주었다. 곰팡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드루이드묘약(과산화수소:물 = 1:9)을 준비해서 꼼꼼히 흙에 뿌려주었다.
3월 13일
이번에는 드루이드 묘약을 꼼꼼히 뿌려준 덕인지, 흙이 촉촉하게 유지되고 있어도 곰팡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분들 댓글을 보니 일주일만에도 발아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득 뿌리라도 나왔을까 궁금해졌다. 미니 삽을 가지고 흙을 살살 파보았는데 갑자기 삽이 울컥하고 흙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새싹을 건드린건가 싶어 유적 발굴하는 수준으로 조심스레 흙을 층층이 파기 시작했다.
곰팡이는 없었지만, 흙 속에 있는 아몬드는 전부 물러져 있었고, 씨앗 안에 있는 하얀 부분이 다 녹아 크림치즈처럼 흐물거렸다. 삽으로 슥슥 무른 아몬드를 건져내서 트레이에 얹어보니 죄다 치약같은 제형이 되어 있었음...
화분 파종은 도무지 내가 할 수 없는 것인가 싶어, 몇몇 유튜브 영상에서 봤던 '냉장고 물발아시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잘 씻은 유리병에 적신 키친타올로 감싼 아몬드 씨앗을 넣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그대로 넣어주면 된단다.
이 쪽은 성공하길 빌어본다!!!!!!!
4월 16일
한달만에 꺼내본 아몬드는 그저.. 차갑고 촉촉하게 잘 냉장된 아몬드 그 자체일뿐 절대 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꾸 제목에만 낚여서 클릭하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실패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놔야겠다. 나는 드루이드력이 아직 부족한 모양이다. 아몬드 키우기는 포기합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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