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사진 몇백장에 캡션달기만 하는 수준으로 일지를 써서.. 농경‘일’지라는 카테고리에 글을 쓰고 있는게 맞나 싶다. 한여름 농사는 원래 물을 주고 수확하고 흰가루병에 걸린 잎들을 제거하는 단순 반복이지만, 원래 농경일지를 쓰기 시작한 취지에 맞게 최대한 하루-이틀 단위로 끊어서 기록해보아야겠다.
동네 농장에서 업어온 이탈리아 무화과가 새 잎을 내기 시작했다. 근처에만 가도 무화과 향기가 날 정도의 나무이다. Burpee에서 산 fignomenal은 갤갤대고 있는데, 더 큰데 더 싸게 산 이 녀석은 처음 와서 노란잎을 떨구며 몸살한번 한거 외엔 건강하다. 나무는 웬만하면 인터넷에서 주문하지 말아야지…
선미 고구마도 잎을 펑펑 쏟는중. 끄트머리가 댕강 잘려있을 때도 있는데, 데크에 가끔 진출하는 새끼토끼가 범인인듯. 잎도 무성한데 고구마줄기 수확을 해볼까? 난 고구마 줄기 반찬을 먹어본 적이 없는듯하지만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가 좋아하길래 궁금해졌다.
토끼인지 다람쥐인지, 라쿤인지 그라운드호그인지 모를 녀석이 화분을 엎어서 봉오리마다 댕강썰어먹느라 초여름 내내 몸살을 앓은 치자. 딸기 타워 위에 올려두니 그제야 기운을 차린듯 새 잎을 펑펑 틔워낸다. 얜 노지월동이 안되니까 곧 흙을 털어내고 indoor soil로 바꾼 뒤에 분갈이해서 안으로 들여놔야겠다.
이렇다하게 수확할 것이 없던 초여름부터 꾸준히 적게는 1-2개, 많게는 한줌 이상 열매를 내어주는 patio choice cherry tomato. 나의 과한 pruning으로 인해 줄기가 앙상해져서인지 바람이 많이 불던날 줄기째 꺾이기도 했다. 줄기를 이어붙여 집게로 고정하니 또 금세 회복해서 열매를 펑펑 단다. 맛은 한국 방토마냥 짭짤한 것이 마음에 든다.
캠핑 다녀온 날 급하게 수정시킨 honeynut 스쿼시. 오후 시간에 서둘러 했는데도 수정이 잘 되었나보다. 점점 열매가 커지는 중.
수확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중인 Listada de Gandia eggplant. 이름 뜻이 간디아 지방의 스트라이프 모양의 가지라는 뜻이라던데 ㅋㅋ 매우 직관적으로 잘 지었네. 우리로 치면 성주 줄무늬 참외쯤 되려나.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달기로 유명하다는 super hybrid 100 cherry tomato. 초반엔 완두콩에 가려 빛을 못 보고 그 다음엔 나의 과도한 pruning에 광합성을 못해서 ㅋㅋㅋ 아직 이름에 걸맞은 결과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마트에서 종종 보이는 vine tomato 모양새를 갖춰가는중.
마늘밭이었다가 고추/대파 밭이 된 베드. 반그늘에서 고통받을땐 땅딸막하더니, 옮겨준지 얼마 되지 않아 키가 쑥 자랐다. 농사는 이렇게 햇빛과 거름이 중요하다.
Patio choice 만큼이나 매번 작은 열매라도 먹을거리를 내어주는 당조고추. 남편이 뭐 맛있으면 바로 말하는 사람인데 이거 쌈장 찍어먹어보더니 아삭하고 향기롭다며 좋아하더라. ㅋㅋㅋ 귀신같은 남자.
기껏 수확해온 토마토는 도마 위에서 자르기 시작하자마자 냄새맡고 달려온 둘째녀석한테 첫 입을 빼앗겼다. 토마토귀신… 마트에서 사온건 안에 씨앗부분만 핥아먹고 버리는데 집에서 키운건 껍질까지 씹어먹는다. 귀신같은 고양이….
크로와상 생지를 구워 반으로 갈라 토미 타르타르 소스를 뿌리고 대충 토마토와 고추를 썰어넣은 아침. 진정한 farm to table.
Fast growing tree에서 주문한 bonanza peach tree. 작게 자라는 품종인데 열매는 주렁주렁 잘 단다고 한다. 복숭아 나무 특성상 cold hardy해서 노지월동도 되고, 내년쯤엔 열매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수형이 좀 애매하다는것..? 며칠 비가 주륵주륵 내리면 눈에 띄게 무성해지는 잎과 가지들 때문에 금세 더벅머리가 되어버린다. 키를 많이 키울 생각은 없지만 곁가지는 좀 쳐내야할 것 같다.
잡초매트를 여기저기 씌우고 나니 달팽이와 개미들이 멘붕인 모양이다. 매트 위를 열심히 누빈 흔적이 보이네. 다 죽어라 크하하
지나간 일지를 다시 보다보니, 너무 식물들의 얼빡 근접샷만 즐비할때도 있더라. 사실 텃밭을 일구면서 제일 자주보는 풍경은 이렇게 허리를 펴고 멀리서 보는 건데, 정작 일지엔 남지 않으니 안타까워졌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추가해두지 않으면 몇년 지나 올해 농사를 떠올릴때 이 풍경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더운 날씨, 높은 습도에 호박 꽃들이 펑펑 피어난다. 수정시킬 것이 없는 때이기에 지금 핀 수꽃들은 댕강댕강 잘라주었다.
저녁은 홈메이드 피자. 매워져버린 파드론페퍼는 페퍼로니쪽에 얇게 썰어 깔고, 맵지 않은 고추들은 끼리끼리 모아 나머지 반절에 채웠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피자.
20분 정도 구워낸 피자를 한김 식히고, 데크에서 자라고 있는 바질을 뜯어다 토마토, 갈릭 아이올리와 함께 맵지 않은 고추를 올린 쪽에 곁들여본다. 나름 훌륭한 농부의 저녁이다.
앞뒷마당 꽃만 꺾어와도 꽃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grocery market에서 장을 보면서 꽃을 하나둘 얹어오지 않은지도 꽤 된것 같다. 겨울부터 씨앗을 파종하고 모종을 키워가며 허덕인 보람이 있다. 일상의 작은 풍요에 감사하게 되는 요즘.
앞집에 사는 인도계 언니는 요즘 내 앞마당 꽃들을 보면 자기가 다 뿌듯하단다. zinnia를 보면서 이거는 무슨 꽃이냐, 다년생이냐 물어보는 프리야 언니. 이건 일년생이야 했더니 그럼 나는 못키운단다 ㅋㅋㅋ "너처럼 관리할 자신이 없어. 다년생 손 덜가는 걸로 알려줘"라는 ㅋㅋ 그뒤로 나는 문자로 종종 예쁜 다년생 꽃이 있으면 보내주곤 한다.
요즘 별것 없는 일상인데도 소소하게 바쁜 일이 많아 잊고 있던 일지. 어느새 또 20여일 밀려버렸다. 이러다가 또 한 사진 300장 얹어서 밀린 방학숙제하듯 올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써놓고 저장해둔 건 그대로 1일치로 올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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